긴즈버그는 자신이 속해있던 시대의 차별을 극복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진보를 이끌었다.
불과 한 달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.
사과문이 올라온 뒤에도 비판 여론은 계속되고 있다.
"러블리한 날", "꾸.안.꾸.한 날"이라니.